Dear.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랑의달팽이
안녕하세요. 저는 사랑의달팽이 인공와우 수술 후원을 받은 25살 박수영이라고 합니다. 어떤 말로 글을 시작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됐습니다. 메모장에 편지를 여러 번 수정하다가 담백하게 수술 후 달라진 제 상황과 감사인사를 전달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20살부터 청력이 떨어졌고 21살 여름 돌발성 난청으로 잔존청력마저 악화되면서 후천적 중증 청각장애인이 됐어요. 대학병원에 가면 교수님들은 늘 인공와우 수술을 권하셨지만 겁도 많았고 구화에 능숙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우리는 마스크가 필수인 시대가 됐고, 구화를 볼 수 없어 사람들과 대화가 어려워지면서 수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올해 막 대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인공와우 수술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간절함이 닿은 걸까요? 과분하게도 전액 수술비를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지난 6월 수술 전 날, 입원을 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귀 뒤의 머리카락을 자를 때만 해도 설렘보다는 겁이 컸습니다. 만약 기대한만큼 들리지 않으면 실망할 제 모습이 무서웠고, 제 선택에 계속 의심이 들었습니다.
수술 한 달 후 처음 인공와우를 착용하던 날 마스크를 끼고도 엄마의 말을 들었습니다. 문장 전체를 모두 알아듣진 못해도 몇몇 단어를 알아듣는 자체가 기적 같았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고 그 온도는 와우를 통해 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날 저는 거의 5년만에 새소리를 들었어요. 짹짹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 부와아앙 오토바이가 도로를 가로질러 달리는 소리, 파삭 자작자작 질감에 따라 달라지는 비닐 구기는 소리 등 다양한 생활 소리가 차차 들려왔습니다.
의성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소리들을 들으며 이전에 보청기에 의지했던 날들은 생각보다 더 안들렸던 거구나 깨달았습니다.
와우를 착용하고 저는 꽤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자막이 없는 한국 드라마도 보고, 심심하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 수도 있어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제가 알고 있던 음과 박자는 다 틀렸더라고요. ㅋㅋ 이전에 즐겨 듣던 노래들도 새로 들어보며 노래를 감상하는 취미도 생겼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도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수술 후 친구들을 만나서, 마스크를 끼고도 제가 말을 알아들으면 굉장히 놀랍니다. 저를 안아주며 그 동안 고생했다고 위로받기도 하고 너무 잘됐다고 축하를 받기도 합니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지 겨우 한달 남짓 지났고 한쪽만 수술한 건데도 저는 후천적 청각장애라 그런지 효과가 기대 이상입니다. 아직 완벽히 듣진 못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 설레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수술 전 계산할 때마저 소통이 힘들던 저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탈피의 고통을 겪고 비로소 나비가 된 애벌레처럼, 저는 고통 끝에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가고싶던 기업의 인턴으로 지원해서 면접까지 합격했습니다! 수술을 하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이런 기회가 생겨서 꿈만 같습니다.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며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적을 선물해주신 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분들과 사랑의달팽이 관계자 분들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제 진심이 이 편지에 담길지 모르겠지만… 항상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2021.08.07.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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